능소화 필 때

마음의 양식/부처님 곁으로

항아리 시주

봄 향기 2020. 5. 22. 22:07

 

               항아리 시주


수술한 다리를 절룩 절룩하시면서도 잊어버릴만 하면
항아리 한개를
관세음보살님 앞에 던져놓고 가시는 법우님이 계십니다

뜻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으로..

남편이 현충원을 가야 하는데 당장 시신이 6개월동안 갈수 없어서

어디 납골탑에 모시기도 비용도 걱정되고 마음부담도 있는데다가 남편분 병원비

장례비도 힘에 벅차서 울면서 어찌하면 좋을지 저희절에 오셨던 분이었습니다

 

"스님..정말 아무 부담없이 모셔주시는..거..맞지요?"

긴가 민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것이 평소 절에는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그래도 해마다 초파일날 연등걸었던 절에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조건재로 500만원 천도재를 하셔야 잠시 모셔준다고 하였나 봅니다

 

"그럼요..노 프라브럼..걱정 붙들어매시고..부처님앞에 아무것도 안하셔도 되구요..

그저 마당에 들어서면 마당 관세음보살님앞에서는 반배합장하시면 되시구

 

그냥 편안하게 내집이다..생각하시면서 언제든지 오셨다 가셔요..스님두 모르는척 할테니요

단 가실때 가지고 온 쓰레기는 치워주시구..ㅎㅎ

스님이 다 치워야 하는데 도량이 너무 넓어서 힘들어서요,,"

 

그런데 49일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상관없이 날마다 오시는데

오실때마다 웬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지요..

 

언뜻 제가 바라보면 납골탑앞에서 하염없이 30분동안 통곡을 하고 계시는 분이셨지요  

에궁...있을때 잘하시지..그러게..관세음보살

 

얼마나 구슬프게 흐느끼는지 스님도 그분이 오시면 약간 긴장도 되고

그렇게 하면서 저와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미소방에서 차 한잔 대접해드리면 ..남편이 마지막 갈때 했던 말들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겨워 돌아가시는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또 하고..

이야기하면서 또 소리없이 통곡하시었는데요

 

마침 그날도 불전에 비싼 딸기를 누군가 올리어서 얼릉 내려서 맛있게 드시라고 대접하면

우리 남편이 마지막 정신줄 놓기전에 딸기가..먹고..싶어 했었는데 그 비싼 딸기를 결국

단 한개도 못드시고 가셨다고.....눈동자가 풀어지셔서 ..흑

넘길수가 없으셔서..흐흑흑 하면서 또 눈물 한바가지

 

49일도 지나가고 어느덧 약속한 6개월도 흘러서 망자님은 절에서 현충원으로 고이
이사하시고
지금은 그 슬픔에서 많이 벗어나시고..

얼굴엔 가끔씩 미소가 번지기 시작합니다

 

언젠가..

"스님..무심정사엔 유독 항아리가 많은데..제가 혹시 항아리도 올려도 되나요?" 하길래

"어브 콜스..그럼요 ㅎㅎ 부처님은 원래 부자집 아드님이셨는데 돈이 그리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세요

 

돈을 올리면 절 경영이 수월하니깐 스님들이 승가를 위해서 가장 요긴하게 쓰시는것이지요

그 어떤것이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한것이라면 보살님... 기쁜 그 마음을 분명

부처님은 알아주시고 기뻐하실것입니다..관세음보살"

 

어떤 불자님은요? 추운겨울날 김장철에 김장하시고 나서 어느날 법당에 갔더니

아... 김치 한포기를 접시에 정성껏 가지런히 올려놓으셨더라니깐요 ...ㅎㅎ

 

제가 그걸 보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던지요

울 부처님 한국 기무치 아무래도 무심정사 법당에서 첨 드셔보셨을꺼다 하구여..

넘 맵다고 분명 놀래셨을꺼에요 부처님이 울나라 사람 아니시잖아 하하하.."

 

둘이 마냥 웃었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잊어버릴만 하면

항아리 한개 혹은 두개 내려놓고 쏜살같이 하산하시네요

그런데 희유하게도 시주하는 그 얼굴은 방긋 방긋 행복한 표정 가득이고요

 

낑낑 무거운 항아리 옮기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대요

 

저 낑낑대며 들고오는 저 작은 항아리 한개가....벌써 몇개야..?

다시한번 헤아려보았더니 엄마야 벌써 10개는 시주한것 같아요

 

작은 선업도 이렇게 모이면 자꾸 자꾸 쌓아져서 누구에게는 작은 기쁨과
행복이 된다는거
스님도 홀로 그거 생각하면서

빈절에서 빙긋이 웃었습니다

 

정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