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필 때

마음의 양식/부처님 곁으로

설산동자(雪山童子) 이야기

봄 향기 2019. 3. 25. 06:02

설산동자(雪山童子) 이야기(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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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득한 과거 세상에서

보살행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설산동자(雪山童子)는 눈 쌓은 깊은 산속에서 부처님께서 수행하실 때

부르던 이름입니다.

설산동자(雪山童子)는 오로지 해탈의 도를 구하기 위해

부귀영화도 다 버리고 설산에서 고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제석천은 설산동자를 시험해 보려고 무시무시한 나찰의 모습으로

나타나 한 게송을 읊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하니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생멸법이니라

이 게송을 들은 설산동자는 무한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을 듣고 깨달음의 등불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게송을 설하신 분은 누구십니까?”하고

설산동자가 주위를 살펴보자 무서운 나찰이 보였습니다.

지금 이 게송을 그대가 읊은 것인가?”

그러자 그 나찰은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대는 어디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게송을 들었는가?

나에게 그 나머지 게송을 들려줄 수 없겠는가?”

바라문이여, 나는 며칠 굶어서 아무 말 할 기력이 없다.”

그러면 그대가 먹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오직 사람의 살과 피를 마신다.”

이에 설산동자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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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그대가 나머지 게송을 들려주면

내 몸을 너에게 주겠다.”

그러자 나찰이 말했습니다.

어리석도다. 그대는 겨우 8글자의 게송을 위해

귀한 몸을 버린단 말인가?”

그대는 참으로 무지하다. 무상(無常)한 이 몸을 버리고

금강신(금강신)을 얻으려는 것이니, 게송의 나머지 반을 들어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

어서 나머지 게송을 들려다오.”

나찰은 지그시 눈을 감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나머지 게송을 읊었습니다.

생멸멸이(生滅滅已)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생멸(생사)이 이미 멸하면, (번뇌)가 고요하고 멸해서 곧 (열반)낙이 되리라.”

나머지 게송을 읊은 나찰은 지체 없이 설상동자의 몸을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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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죽음을 각오한 설산동자는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대로 죽으면 세상 사람들이 이 귀중한 진리를 알 수 없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방금 들은 게송을 남기기로 결심하고 그 게송을

바위, 나무, 길 등에 많이 써두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바위에 올라 나찰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설산동자의 몸이 땅에 닿기 전에 나찰이 제석천의 모습으로 돌아와

커다란 손으로 설산동자를 땅 위에 고이 내려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제석천을 비롯한 모든 천상 사람들이 설산동자 발아래 엎드려

찬탄에 찬탄을 거듭하였습니다.

설산동자가 목숨을 바쳐 얻고자 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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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諸行無常)하니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생멸멸이(生滅滅已)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생멸법이니라.

  생멸(생사)이 이미 멸하면, (번뇌)가 고요하고 멸해서

  곧 (열반)낙이 되리라.”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한결같음이 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네.

이것이 바로 생멸하는 우주만물 속에 내재해 있는 진정한 법칙이다.

그러므로 생하고 멸하는 것 마저 이미 멸해 버린다면

고요하고 고요한 진정한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

                                                                                          - 열반경 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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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이란 괴로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번뇌를 벗어나면 마음이 고요하고 청정해져서

일체의 집착이 없어져 괴로움의 원인이 아예 사라져 버립니다.

슬픔도 외로움도 괴로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정토행자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염불하므로

일체의 번뇌가 일어나도 이를 즉시 알아차림하여

더 이상 번뇌의 불길이 치솟지 않게 합니다.

그러면 알아차림 하는 동안은 마음 청정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염불하며 행동과 말과 생각을 알아차림해 가면

점차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 집니다.

그래서 염불행자는 살아생전에는 염불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어 행복을 이루고

임종 후에는 아미타불의 인도로 극락에 태어나

모두 무생법인의 수업을 쌓아 결국 부처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정토행자는

오늘도 염불하고 염불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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