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무슨 언어로 말씀하셨을까?
답은 당신의 고향인 북마가다어(North Magadhi)다.
이것은 빠아리어(Pāli)를 강조하며, 부처님 말씀이 마치 빠아리어로 되어 있었다는 착각하는 남방 전통에 반대하기 위한 합리적 추론이다. 깨달음을 얻은 인간 가우따마 시따르타는 항상 현지어로 말하는 것을 강조했고 그 전통에 따라 인도에서 불교는 신성한 언어인 산스끄리뜨어의 벽을 너머 대중언어로서 전 인도에 퍼져나갈 수 있었다.
빠아리어는 오늘날 갠지즈 강에서 서쪽으로 한참이나 더 간 당시 문명의 서부 변방의 언어였다. 이것은 붓다의 반열반 1백년 후에 열린 오늘날 산치 옆의 우자인에서 온 2차 결집의 소수파인 상좌부 승려들이 사용한 언어다. 이 상좌부들이 이후 인더스 강의 지류인 끄쉬쁘라(Kshiprar) 강줄기에서 벗어나 서인도로 흐르는 나르마다(Narmada) 강을 따라 아라비아 해안에 이르고 이를 따라 내려가다 다시 남북 인도를 가르는 끄리쉬나(Krishna) 강을 따라 동쪽으로 넘어온 뒤 스리랑카로 건너갔다는 게, 일반적으로 남방불교, 즉 상좌부 전통의 전파사다.
일반적으로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까(304–232 B.C.) 때 스리랑카로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도 사이클론이 곧장 덮쳐 오늘날까지 인도 최고 소수민족 집결지인 벵갈만쪽이 아닌 이와 같은 지그재그형으로 불교가 전파되었던 것이다. (자이나교는 이와 달리 곧장 남하한다고!)
남인도 불교사에 대해서 어지간한 정보를 접해본 이와 같은 빠아리어의 기원에 대해서 알고 있으므로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초기 불교에 가장 가까운 언어임을 인정한다. 실제로 안드라 쁘라데시의 어휘의 80% 정도는 이 빠아리어 기원이지만, 이것 또한 올바르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왜냐하면 문자 언어 이전에 구두 언어가 항상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쇼까의 마우리아 왕조는 전인도 통일속에서 단일된 문화를 창출하기 바랬지만, 실패했다.
따라나타의 『인도불교사』에 보면 재미난 언급이 나온다. 인도의 18부파들이 자기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그것이다. 즉 상가의 분화와 더불어 각 토속어들 역시 문자 언어로 옷을 갈아 입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도의 언어 분화·발달사에서 불교의 부파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적은 논문을 본 적은 없다. 아마 힌두 학자들에게 이 주제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자기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남방의 언어야 그렇다 치고, 북방의 언어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산스끄리뜨어로 굳어졌을까? 보통 산스끄리뜨어를 나눌 적에, 빠니니(Pāṇini, 기원전 4세기)의 문법책으로 고전 산스끄리뜨어가 확립되었다고 본다. (인도측에서는 빠니니를 붓다 이전인 기원전 6세기로 위치하여 불교보다 먼저 힌두교를 강조하지만!) 그리고 그 이전의 산스끄리뜨어를 베딕(vedic) 산스끄리뜨어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빠니니의 문법 체계에서 자유로웠던 하이브리드(Hybrid, 雜) 산스끄리뜨어가 존재하며 주로 반야부 경전, 달리 마래 붓다를 초월적 존재로 보며 불교 현상학인 형이상학을 강렬히 반대했던 이들이 ‘적던’ 언어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불교의 언어는 붓다가 강력하게 거부하였던 식자들의 언어인 베딕 산스끄리뜨어가 아닌 쁘라끄리뜨어(Prakrit)였다. 빠아리어도 이 쁘라끄리뜨어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굽타 왕조는 이 문화의 통일을 언어의 통일로써 이룰 수 있었다.
실제로 각 부파들이 자기들의 논의를 가다듬었지만 고전 산스끄리뜨어로 불교의 경론들이 통일되기 시작한 것은 북인도의 굽타 왕조(320 to 550 C.E.) 때로, 이 때를 전후하여 산스끄리뜨어가 인도 식자들 사이의 공용어로 채택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붓다의 재세시부터 약 8백 여 년의 걸친 이와 같은 언어의 변화·발달 속에서 붓다의 언어, 세속의 쁘라끄리뜨어언 북마가다 언어는 산스끄리뜨어로 그리고 빠아리어로 나눠진 채 이후 세계 각지로 전파된 것이다.
남방이야 원래 구두 전통이라(사실 읽고 외울 경론도 많지 않다, 대승에 비하자면^^) 빠아리어의 원형이 보존되었지만 (각국마다 자기 문자로 기록했다) 북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올 적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보통 한역 역경의 시기를 꾸마라지바(5세기 이전) 이전을 고역(古譯), 그리고 그 이후를 구역(舊譯), 그리고 7세기 현장 이후의 시기를 신역(新譯)으로 나누는데, 고역의 초기 때 전래된 경론들은 실제로 산스끄리뜨어가 아닌 북인도의 속어인 간다라 언어(Gandhari)였을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여, 승가(samgha) 이전에 승려(僧侶)의 승(僧)이 먼저 전래되었다는 것 등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불교 언어 문제를 다루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언어(language)와 문자(script)는 다르다는 것이다. 남방의 빠아리어라는 언어는 존재하지만 통일된 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국마다 자기들의 언어에 따라 표기하였기에. 그리고 산스끄리뜨어는 오늘날 힌디어와 거의 동일한 ‘신의 언어’ 데바나가리로 표기되어 있지만, 각 왕조들은 가지 왕조의 전통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내었다.
불교를 공부하는, 특히 역경(譯經)을 하는 처지에서 인도의 언어들에 대해서 생각을 좀 되짚어 보았는데, 결국 ‘우리말’이라고 하는 것, 그 통속성 속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붓다가 사용한 ‘불교적’ 언어를 지켜내는 것과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고답적인 한문투도 아니고, 그렇고 영어에서 비롯된 ‘새로운 불교 용어’도 아닌, 당대의 살아 숨쉬는 불교를 위한 언어 말이다. [출처] [공유] 부처님의 언어, 역경(譯經)의 언어 (금강/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작성자 경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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