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필 때

마음의 양식/부처님 곁으로

염불 정진기도의 과보(果報

봄 향기 2019. 4. 19. 05:49


 

염불 정진기도의 과보(果報)(1361)

-과보(果報)와 화보(花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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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기도는 오직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목표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소원성취를 비는 단순한 기복 기도와는 다릅니다,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세우면,

그 수행자는 부처가 될 존귀한 자이기 때문에 

이 우주의 호법신장이 보호하게 됩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마장에서 벗어나게 하여

결국 대원을 달성하게 도와 줍니다.

그러면 그 과정에 있는 작은 소원들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해 줍니다.

 

#

염불정진기도를 하면 누구나 극락에  태어나게 됩니다.

아미타부처님의 48대원에 의해서

평소 염불정진하고 특히 임종시에 10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그 힘에 의해 아미타부처님과 성중의 영접을 받아 극락에 태어납니다.

극락에 태어나면 누구나 6신통이 자재하고, 탐진치가 소멸되어

부처가되는 일생보처의 지위에 오릅니다.

부처가 되어 극락세계를 떠나지 아니하고 그의 분신이 사바세계에 와서

중생을 구제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불하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원을 세우는 것을 발보리심이라

합니다.

 

기도하는 목적을 대원성취에 두면 오히려 가정의 행복을 위한

작은 소망은 성취가 더 잘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불하여 중생 구제하리라는 대원은 보리심이기 때문,

불교의 모든 경전이 보리심을 일으키는데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으며,

보리심을 일으키는 자체만으로도 무량한 공덕을 짓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대 원력을 세우면 작은 소원은 왜 저절로 이루어지는지 그 원리는

과보(果報)와 화보(花報)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설악산 정상을 목적지로 하여 등산을 할 때, 정상에 오르기 전에

산에 오르면서 온갖 산새들, 수려한 산천과 정기, 청량한 공기,

은 계곡 등을 대하면서, 우리는 거기서 말할 수 없는 평온함과

량함을 선사 받습니다.

 

설악산 정상은 보리심을 발한 대원성취에 비유가 되고, 이것은 과보이며,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선사 받는 모든 것은 작은 소망의 성취에 비유됩니다.

이것은 화보입니다.

 

화보란 과보가 있기 전에 당연히 받는 보상입니다.

과보(果報)는 열매를 얻는 것이며, 화보(花報)는 꽃을 보는 것입니.

열매가 열리기 전에 반드시 꽃은 피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잘 알 수 있듯이 성불하여 중생 구제하는 대원성취()

목적으로 정진기도를 하면, 각자 가정의 행복을 원하는

소망의 성()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백히 알게 됩니다.

 

벽과도 염불정진법을 창안하시고 사바에서 극락세계를 책을 지으신 도중스님은 사경을 헤매는 지독한 냉병에도 한 번도 부처님 전에

 냉병 좀 낫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소원을 빌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화보의 이치를 잘 알고 철저히 믿기 때문이며, 오직 중생

구제의 대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사사로운 이기심에서는

연히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

정진이 기도로 되게 합니다.

정진이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기도하면 자동으로

지극정성이란 말이 따라붙습니다.

지극정성을 빼어 놓으면 기도는 성취하지 못합니다.

 

정진함에 있어서도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극정성을 다하

정진하지 않으면, 타성일편(打成一片)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극정성이란, 정성이 극에 달했다는 뜻인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정성이 극에 달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이 지경에 이르면,

도 잊어버리고 내가 무슨 소원을 이루어야 하겠다는 마음까지도

다 잊어버리고,

오직 불보살님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뿐인 일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경지와 정진 일념의 경지가 전혀 둘이 아닙니다.

정진함에 있어서도 신명을 다 바쳐 몸도 마음도 잊어버리고,

직 정진 일념뿐인 경지가 어찌 기도 일념의 경지와 다를 수가 있겠습니까

 

수행·정진·기도가 오직 지극정성 하나로 다 통하는 것입니다.

참된 정진, 참된 기도와 함께 중도의 삶을 실천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이(理)와 사(事)를 함께 닦는 진실로 원만한 수행입니다.

 

우리는 정진과 기도를 바르게 인식하여, 정진과 기도를

둘로 보는 견해에서 벗어나서 둘이 하나인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 부처님 뜻에 합당한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염불행자가 되려면

반드시 극락에 태어나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발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염불행자의 발보리심입니다.

염불행자는 염불하며 착한 일을 꾸준히 해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지를 항상 점검하고 '알아차림'합니다.

이렇게 대원을 세워 정진하는 염불수행자는

위 과보와 화보의 원리에 의해

정상에 오르기 전에 아름다운 꽃과 청량한 자연의 선물을 받듯이

작은 소원들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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