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필 때

사노라면/寺刹.관광.共有

[스크랩] 영암 도갑사. 강진 남미륵사(신광사)

봄 향기 2017. 4. 14. 23:51

 

 

 

도갑사는 18년 전 월출산을 등반 한 뒤 두번째 가는 곳인데, 5시간여 등반하면서 월출산의 빼어
난 경치에 수 없는 감탄사를 연발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 올라 더 한층 감회가 깊었다.주차장에서
 부터 당시의 흔적을 기억할 수있었으나, 또 한번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바람 새찬

경내로 잰걸음을 옮겼다.

 

 무위사 회호리 바람을 뒤로하고, 창밖으로 펼처지는 월출산의 바위군들을 보면서, 도갑사 가는
길에 월출산의 빼어난 경포대를 볼 수 있는 녹차밭이 즐비한 곳에 잠시 쉬면서 풍광에 취해 한
껏 기분이 좋아 일행들의 탄성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예정된 삼사순례의 마지막 사찰인 도갑사의 매서운 찬바람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짧은 시간이였지만 즐거워했던게 나중에 생각하니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도갑사는 해탈문을 들어서면 대웅전까지의 약간의 둔덕인 지형에 예전 사천왕지가 크게 남아
있고 왼편으로 도선국사의 박물관 등이 있으나 이날 따라 너무 심한강풍 때문인지 문들은 굳게
닫혀있어 관람을 할 수가 없었으며, 사진 촬영할 엄두가 나질 않아 제대로 담지를 못했다.

 

 

월출산 경포대와  茶 밭주위 경치가 참 좋았다. 

 

현재 임시로 사용하는 대웅보전은 사찰의 명성에 비해 아주 적은 규모이다.

 

도갑사는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
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으며,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
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
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
다. 해탈문(국보 제50호)에서 안으로 바로 보이는 대웅보전은 1999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다
시 짓고 있는데,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 서도 대규모의 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 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월출산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기념비 촬영할 생각은 사라지고, 어서 경내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였다. 
 

 

 

 

    
1653년(효종4년)에는 '도선수미비'와 '월출산도갑사석교 중창비'가 세워졌는데,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도갑사의 위
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1677년(숙종3년)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
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
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창건하신 대가람으로 그 뒤를 이은 수미
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
치를 널리 펼치셨다. 
 따뜻한 난로가에 앉아 파전에 곡차(찹쌀동동주) 몇 잔을 나누다보니 몸도 녹이고 진정이 되었다.
작은개울에는 왕개구리들이 쉼없이 울어대는 걸 보면, 그래도 봄은 이미 가까히 와 있는듯 했다.
                   

 

 

불교 성지순례 전문인 권기사의 배려로 2007년 4월 8일에 점안식을 했다는 거대한 황동 좌불인
아미타불상이 모셔진 전남 강진군 군동면 '세계불교 미륵대종총본산'인 남미륵사(주지.법흥스님)
를 관람하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코끼리상과 중국풍의 불이문(不二門). 길 양옆으로 시주
자의 명패가 붙은 수 백개의 석물 존상들이 놓여진 걸 보면서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합장을 하게되는 현상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경내로 들어가니 어느 한 마을을 통채로 사찰로 꾸미고 있어 보였으며, 아직도 몇채의 일반가옥
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어느 한 곳에는 엄청 많고 큰 석재(돌)들이 쌓여있었다.큰 도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논가 산자락에 세워진 사찰이라 누구에게나 눈에 잘 띄게되어 있어, 찾아가기는

쉬운 곳이였다.

 

 이 대불(大佛)은 좌대(座帶)에서 불상까지 높이가 36m로 아파트 12층 높이에 전체 무게도 150t
이나 된다고 하는 엄청난 황동불상과 수 많은 석불상을 조성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것
으로 여겨젔다. 경건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일반관람객들에게는 구경거리로는 좋을 듯 했다.

 

 

 노보살 중에는 수를 알 수 없도록 많은 석조물에 볼꺼리가 많아 좋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거기다 이름도 생소한 '세계불교미륵대종총본산' 남미륵사(南彌勒寺)는 대불은 아미타불을 모셨
고, 곳곳에 관세음보살상을 조성해 두었으며, 스피커에서는 관세음보살 정근이 계속해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작년에 삼랑진에 있는 어느 사찰에 갔을 때도 수많은 석조물들을 보면서,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
는데, 이 곳 남미륵사에 비하면 적은 규모였는데도, 나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라 일행들의 한결같
은 의견이 경건함보다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엄청난 비용이 필요로 했을텐데, 단순히 주지스

님의 능력이라고만 여기기에는 무언가 개운잖은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신광사. 복천사

사순례 백련사. 무위사. 도갑사. 남미륵사 이날따라 도갑사 찬바람 지독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문헌 참고 : 인터넷.
 
 2008년 2월 23일 청파
출처 : 파란 물결
글쓴이 : 靑 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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